조선왕조는 국왕을 정점으로 양반사대부라는 지배계층이 나라를 다스리던 중앙집권적인 봉건제 사회였다. 양반사대부은 비록 소수에 불과했지만 토지를 소유한 거대 지주였다. 농업이 지배적인 산업구조였던 봉건시대에 토지는 가장 강력한 생산수단이다. 조선사회는 토지라는 생산수단과 유교로 대표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정치구조까지 장악한 양반사대부들의 나라였던 것이다. 심지어 조선후기에는 국왕조차 양반사대부의 또 다른 존재쯤으로 생각하는 사상이 널리 퍼져있었다. 이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조선후기 현종-숙종시기의 예송논쟁이다. 예송논쟁의 발단이 얼핏 주자학의 주요 분야인 예학의 학문적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국왕이 사대부인가 이었다. 결말은 국왕을 사대부와 같은 존재로 취급한 서인 노론세력의 궁극적 승리로 나타났고, 이를 계기로 양반사대부가 국왕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양반사대부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 중앙관리로의 진출이었다. 양반사대부에게 관리로 나가 입신양명하는 일은 숙명과도 같은 과업이었다. 양반사대부가 관리에 임용된다는 것은 자신의 영달은 물론 가문을 지키고 신분사회의 확고한 헤게모니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반면 관리로의 진출이 여러 대에 걸쳐 막힌 양반은 상민과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다. 따라서 관리가 된다는 것은 양반사대부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그 관리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과정이 바로 과거이다.

중세봉건국가의 일반적인 관리등용방법에는 자천(自薦)에 의한 방법과 타천(他薦)에 의한 방법이 있었다. 자천에 의한 관리 선발 방법에는 과거와 취재(取才)가 있었고, 타천에 의한 관리 선발 방법에는 음서(蔭敍)와 천거(薦擧)가 있었다. 음서는 혈통에 의하여 관리를 뽑는 방법이요, 과거는 능력에 의하여 관리를 뽑는 방법이었다. 고대에는 음서나 천거가 주요했다면 중세 이후에는 과거 등 자천에 의한 제도가 우세했다.

과거제도는 유교를 국가의 지도이념 내지는 실천윤리로 삼았던 나라에서 주로 유교경전의 시험을 통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이다.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587년) 과거가 한반도에 도입된 것은 고려 초 광종 9년(958)의 일이다. 광종은 지방호족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확립하고자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처음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고려는 과거를 통해 관리로 진출하는 양반사대부보다 호족세력 등 귀족계층의 세력이 강해 본격적인 과거제도의 정비와 발전은 조선시대에 와서야 이뤄졌다. 유교를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게 과거제도의 정비와 발전은 당연한 과업이었을 것이다.

보령의 양반들 또한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들의 흔적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실록은 일기나 사관이 적성한 사초 등 각종 기록물들과 국왕의 재임 중 그 업적을 기록한 행장(行狀)이 주요 구성부분이다. 바로 이 행장에 국왕의 재임 중 시행됐던 과거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실록 속 행장과 과거 급제자를 연대순, 시험종별 그리고 성적순으로 수록한 명부인 국조방목(國朝榜目)에서 보령의 과거급제자 명단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국조방목은 조선시대에 실시된 최초의 문과 시험인 1392년(태조 1)의 시험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과거급제자를 수록한 문서이다. 국조방목에는 각 급제자의 자·생년·본관·거주지, 응시 당시의 직위 또는 신분 외에도 그의 사조(四祖:父·祖·曾祖·外祖)와 처부(妻父), 그리고 관력(官歷)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조방목은 흔히 양과(兩科)과 불리는 문무과의 합격자 명단만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과거는 문무과 외에도 기술직 관리를 선발하는 잡과가 시행됐다. 보령의 역대 과거 합격자 명단을 폭넓게 다룬다면 당연히 잡과도 포함돼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본 연재에서는 잡과를 포함한 과거 급제자 모두를 참고 했다.

국조방목 등 과거합격자 명부는 급제자의 신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어 당시 보령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합격자 명단에서 보령의 양반들이 중앙정계로 진출해 양반가문의 입지를 다져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자료인용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