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눈 뜬 채로 눈이 하얗게 멀어버리는 ‘실명 전염병’이 도시에 퍼진 4년 후 선거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수도의 정치를 평가하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83%가 백지투표를 던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시작된다.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실명 전염병이 퍼질 당시,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권력자들이 사건에 대한 무언의 함구령을 내린 것에 대해 시민들이 던진 백지투표다.

 이 소설에서 백지투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기존 정치에 백지투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에 눈을 뜨게 된 대중의 모습이다. 또 백지투표는 대중이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무기이자 권력자에 대한 시민들의 경고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구의 소설 속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 하나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누가 당선되든 똑같아. 뽑을 인물이 없어~’ 등 선거철만 되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이런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투표에 대한 무관심은 낮은 투표율로 이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저조한 투표율은 당선자의 대표성에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선거제도는 물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게 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국민의 무관심과 외면은 무책임한 정치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국민을 무서워할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처럼, 포기한 사람들의 권리가 본래대로 유지될 리가 없는 것이다.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치계의 변화뿐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투표참여가 중요한 것도 물론이거니와 올바른 후보를 골라서 선택하는 안목을 키우는 것,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후보를 선택하는 안목을 가진 유권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정치도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또한 선거는 후보자만의 일이 아니다. 유권자가 선거의 중심에 바로 서야한다. 정치인들은 우리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대의민주주의 제도하에 사는 우리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우리 대신 정책을 펼치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예산을 쓸 권한을 선거를 통해 정치가들에게 부여한다. 우리가 맡긴 일을 얼마나 잘 할지 판가름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은 진심으로 깊이 고민하고 신중하게 투표해야 할 것이다.

투표는 유권자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