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백 기완
백 기완을 돌아보며
 백 기완선생님은 익히 아다시피 재야의 어른이고 통일운동의 지도자다. 우리가 아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쓰신 분이기도 하고 대중연설로도 유명하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손을 들어 포효하는 연설 모습은  영락없이 백두산 호랑이요, 만주벌판 달리는 독립군의 기상이 느껴진다. 문익환목사님이 열정이면, 백선생은 패기다. 문목사님이 문사이면 백선생은 무사다. 이 분은 1933년생으로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무턱을 겨우 나왔으나 독학으로 인문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공을 잘 다뤄 장래희망이 축구선수였으나 적을 두지 못해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2002년 축구협회의 요청으로 파주축구쎈터에서 국가대표들에게 쩌렁쩌렁한 말투로 강연을 단숨에 해 냈고 이에 히딩크가 크게 감명을 받았다 한다. 이 것으로 다소나마 그의 꿈은 이루어진게 아닌가 싶다. 백선생님은 제도정치권에는 끝내는 들어가지 않고 민중의 독자세력화의 원조로 87년 대선에 나갔다가 양김에 단일후보을 촉구하며 사퇴한 적이 있다. 92년도에도 독자 민중후보로 대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통일문제연구소>소장으로 있으면서 통일운동과 진보적 노동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백선생님은 72년 유신헌법이 발효되고 누구도 동토의 땅에 햇불을 들 엄두를 못낼 때 73년 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을 시작했고, 인혁당사건과 장준하선생 의문사사건이후 전개된  반유신투쟁의 선봉에서 수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한 집안 가장의 애환
 백선생님은 이북 황해도 출신으로 남북의 분단이 외세에 의한 것임을 자각하고 친일반역자들이 청산되지 못한 것을 못내 분해했던 청년이었다. 그는 백범의 노선에 서서 외세배격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철저히 그 사명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이 수필집은 첫째 딸인 '담'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70년대 후반에 쓴 글들로 당시 그의 나이 40대 중반에 해당된다.
 글 속에는 저자가 밖에서 민주화운동이랍네 하고 돌아다니면서 안에서는 개인주의적인 삶에 매몰되는 것을 반성하면서 당시 민주화운동의 비용을 대기 위해서 집안의 피아노를 가족과 상의 없이 팔아 버린 일화가 나온다. 부인과 딸들이 반발하고 며칠째 문을 닫고 나오지를 않자 아버지인 백선생이 "애들아 문을 열거라, 어서. 아버지가 울고 있다"라고 애절하게 자신의 잘못을 빌면서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이 나온다. 운동가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가 겪었을 애절함이 묻어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어느 여대생의 고민 토로
 책에는 민족의 개념과 통일의 필요성을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딸인 담에게 현모양처로 살지 말고 통일의 역군이 될 것을 설파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들 고생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바라는대 그는 그렇지 않았다.
 우연히 기차간에서 만난 여대생의 말을 듣고 분노하고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숙연하기까지 했다. 어떤 말을 했기에 그랬을까?
" 어차피 평범하게 사는 거죠. 졸업을 해 보았자 꼭 마음에 드는 직업을 구할 수는 없을 게고, 일단 아무 것이라도 일거리를 구하면 수긋수긋 일을 하다가 상대가 생기면 정착도 해야 하고 아뭏든 입학 초기에 생각하던 희망이랄지 이상이라는 게 별게 아니게 느껴졌어요. 모든 것이 어려운 것 같애요"
 이 말은 좀 귀에 익지 않은가? 바로 우리 시대 우리 청춘들에게 듣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70년대 청춘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고민은 반복되고 삶은 되풀이 되는 것이라 하지만 백선생님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시대의 과제와 민족의 운명을 직시하고 통 크게 자기 삶을 개척하라고 부르짖는다. 우리는 자신에게,청춘들에게,그리고 자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  장년인 나에게도 깊은 성찰을 던져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통일운동의 논리
 70년대 통일운동시대에도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다는 사람이 많았나 보다. 백선생에게 있어 민족의 개념은 '피가 비슷하고 말이 같고 풍습과 문화가 같고 또 일정한 공동운명체의 집단'일 뿐 아니라 '역사의 진보라는 실천영역에서만이 파악되어지는 기능이어야 그 값이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앞의 것만 강조하는 우리민족이라는 허구가 지배계급에 의해 이용되면 나찌의 독일민족처럼 악용된다는 것이다. 민족운동은 민중이 주체가 되고 역사의 진보편에 설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이 왜 되어야 하면 바로 분단의 지배구조가 반민중 반민주에 서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통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생에게 외세는 배격의 대상이며  '조국 분단 현실에 이해를 걸고 있는 외부의 구체적 정치 경제 군사력'뿐만 아니라 '분단을 수용한 일제 잔재와 친일 민족반역자,분열주의자'와 '외세의존적 정치,경제,문화 질서체제'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분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평화공존을 외치거나 국가주권을 부르짖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패권국간의-글이 쓰여진 때는 70년대이니 미소대립으로 상징되는 동서냉전체제-이해구도에 의해 설정된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그것이 냉전으로 가든 열전으로 가든 평화로 가든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지 민족의 자주적 결정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역할
  책에는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낱낱이 들어나 있는데 " 남을 가해하여 처먹어야만 되게 마련인 장삿꾼 나라의 못된 점을 근본적으로 고치기전에는 우리의 우방일 수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당시 주한미군의 철수이야기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선생은 이로인해 일본의 한반도 진출과 재무장을 야기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대륙세력의 견제이므로 비록 미군을 철수한다 하더라도 그 역할을 일본에게 떠넘길 공산이 크다. 둘째, 그로인해 일본도 군국주의 무장화의 명분을 얻을 것이고 그것이 일본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왜 돈 잘 버는 사람을 미워하는가?
 책에서는 천민자본주의로 치닫고 있는 한국경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소위 돈 번 사람에 대한 강력한 불신이 있는데 나름 이유가 있다. 소위 당시 여대생들에게 일등 신랑감인 사업가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면, ' 금융특혜, 수출금융특혜. 세제특혜. 독과점 가격 특혜, 국토에 대한 부정불하 특혜, 통화량증가에 따른 이득, 국제결제 수단처럽되어버린 미국돈과 우리 돈의 환율에서 얻어지는 특혜, 산업공해를 민족의 재산인 자연에 방기함으로써 생긴 원가절약 이득, 근로자의 생명줄인 노동삼권의 억압으로 인한 노동조건의 열악과 저임금에서 오는 특혜, 농업생산물에 대한 저곡가 정책으로 이른바 협상가격차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특혜- 가진자들의 돈벌이 특징.'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정치의 정의, 영웅의 모습
  선생은 정치를 '인간적 삶을 구현하는 의지와 행동의 최고형태'로 평가하고  ' 단지 권력 싸움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전진시키는 기본적 정신'이 정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삶이 정치라고 하는 가 보다. 설득하고 주장하고 동의받고 연대하고 실천하고 기존의 구도를 깨고 뒤집어 없는 것. 이것이 정치니까. 그러나 정치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자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은 진정으로 정치라 할 수 없을 게다. 백기완선생은 이런 사람들보다 " 현실적으로는 소시민의 위치에 있으나 소시민화를 요구하는 사회구조의 근본적 모순과 싸우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이라 말한다.

친일 문학과 순수문학의 비판
 선생은 문학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는데, 소위 순수문학의  역사적 연원을 분석하고 그 반역성을 폭로한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박목월을  비판하는 대목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된다. 민중들의 굿문화, 비나리, 구전요등을 예로 들며 설명하는 민중의 문학과 예술론은 전부 동의할 수는 없으나 공감할 부분은 많다고 생각된다.

책에 대하여
 책을 읽다 보면 ‘00’으로 처리된 단어들이 자주 나온다. 검열의 결과인지 옥중에서 나온 원본 원고지의 글자가  독해가  안되어서 그런지 그 사정을 모르겠다. 어찌됐든 페이지마다 비장감이 넘치게 하는 데 역부족이 없었다. 이 책은 시인사에서 79년 4월 19일에 초판으로 발행되었고 85년 2월 25일에 재판되었다. 인지에는 백기완의 이름이 들어간 도장이 꽝~ 찍혀 있다. 그 때 돈으로 2,300원이었다. 백기완선생님의 건강을 진심으로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