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은 갔다.
올 4월은 정말 잔인했다.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4월은 갔고, 느닷없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전 세계를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다. 인류의 평화는 전쟁으로, 질병으로 위협받고 또 깨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국제정치의 냉혹함도 목격했다. 정의가 힘에 짓밟히고, 평화를 향한 인류의 염원이 강대국의 패권주의 앞에서 묵살되는 것을 몸과 가슴으로 처절하게 느꼈다.
올 4월은 유난히도 비가 많았다. 내리는 빗줄기는 4월의 상처와 괴로운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씻어내려는 듯 내렸다. 이제는 신록의 계절 5월이다. 피천득 시인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러주고 화려한 왕관을 씌워줬다.
꽃피는 봄보다 신록의 봄이 더 봄답다. 꽃은 사람의 품에 안기지만 신록은 사람을 안아주기 때문이다. 동심도 활짝 피어난다. 자식사랑에 삶의 보람을 느끼고,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며 가정의 소중함을 되돌아보는 ‘가정의 달’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극도의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갈등의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난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으나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敵)’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보령을 갈갈이 찢어놓고 있다.
옛 성현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뇌동(雷同)하지 않으며, 소인은 뇌동하되 화합하지는 못한다(小人同而不和 大人和而不同)」 즉 이제는 소인배같은 생각을 버리고 비록 나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보듬어 화합하라는 말이다.
민주주의란 생각이 다르고 주장이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아닌가. 화합을 통한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공동운명체요, 그래서 하나라는 의식이 전제될 때만 새로운 비젼, 즉 우리의 나아갈 길과 그의 추진을 위한 에너지 결집이 가능해진다.
5월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괴테와 하이네도, 고은, 김영랑, 김동환 등 많은 시인들이 5월을 노래하고 찬미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잊지못할 ‘5월’이 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죽음의 길을 행진해간 그들의 절규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를 위해 흘린 ‘피의 역사’를 신록처럼 피어나게 해야한다. 그날의 광주는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드높은 표상이었다.
이에 우리는 5.18정신을 되살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더욱 확고히 발전돼 나갈 수 있도록 화해와 화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땅의 지도자들이여, 23년 전 그 해 5월, 광주의 마지막 밤, 확성기를 통해 울려나온 한 여인의 절박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시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가 공수부대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시민 여러분, 부디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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