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에서는 앞의 시들과는 좀 다르게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이념이나 주의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사람과 세상을 선하게 보려했던 시인의 시선이 느껴진다. 마치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해 준 나이팅게일처럼 말이다. <정주영>, <80년대 젊은 임들이여>, <잠 설친 밤>, <대전 국립묘지>, <IMF>, <정신대 할머니>, <갈매못에서>, <보령원에서> 등이 그러했다.

마지막 시는 <해병의 아들아!>이다. 시인은 이상용이 진행하는 국군위문공연에 출연한 사연을 이야기 해준다. 그때 훈련으로 백령도에 나가 있는 아들을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공연장에서 시인은 이 시를 읊었고, 사단장은 크게 감동하여 돌에 새겨 연병장에 세우라고 명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아들을 생각하며 해병을 노래한 시를 읽어 보자.

                   천리 행군 군화속
                   너의 발바닥 물집 터지고
                   굳은살로 못이 박힐 때
                   한계의 고통속 허파에서
                   불화기 품어 나온다
                   북서풍 매운바람
                   맨살로 막아내고
                   한나절은 바다에서 살을 절이고
                   한나절은 허공에서 꿰어 매달고
                   그 고딘 지옥훈련
                   너의 피가 달여져서 끈적거릴 때
                   너의 살은 근육으로 변하고
                   너의 힘줄은 질겨지리라
                   깊은 밤 잠 설치는 순검 속에
                   고향의 어머니 단 꿈꾼단다.
                   이 세상 귀신들도
                   너의 얼룩 무늬옷
                   빨강 명찰 앞에선 까무러치고
                   남아로 태어나서
                   그 보다 진한 고통 또 있으랴만
                   한번 맺어진 해병의 고리
                   천대 만대 영원하여라.
     
시인의 시는 서정과 서사의 사이에 있다. 순수와 참여의 사이에 있기도 하다. 시인의 자리는 비록 보령에 있지만 시선은 내면과 외면, 고향과 세상을 아우르고 있다. 스스로 무지렁이 농사꾼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느 고상한 문학가나 교수보다 높아 보인다. ‘고문진보’에 나오는 한시에도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벼슬보다 중요하고 즐거운 일은 밭가는 거’라고. 거기에 시 한수 남기는 풍류가 있어 금상첨화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부럽고 시인의 시를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