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운동은 민족 고유의 문화를 지켜가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계화와 지역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이다. 저자는 세계화가 나라와 민족간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라 한다. 세계화가 본질적으로 미국식 문화로 일색 되는 것이라 할 때, 우리의 문화는 차별되고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연대는 서로간의 고유한 차이가 존재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 정체성들을 잃거나 보장되지 않는 일색화는 차별과 흡수, 나아가 미래의 부재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음식문화라는 것이다. 한식이야말로 패스트푸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문화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탈리아에는 파스타가 있고 인도에는  카레가 있으며 한국에는 우리의 한식이 있다. 이것이 슬로푸드인 것이다. 인스턴트식으로 만들어진 카레와 파스타는 패스트푸드일 뿐이다.
 
나는 남들 먹는 거 다 먹고 살겠다.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의 식습관과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언젠가 지인이 중금속 오염때문에 바다 생선을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은 안 했지만 배알이 꼴리는 느낌을 받았다. '야~ 그렇다면 이 세상에 먹을 게 어디 있냐?'.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라면공장 견학 다녀온 친구가 라면을 먹지 않고 농약 묻은 논둑에서 채취한 쑥을 보고 다시는 쑥개떡을 안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것 저 것 따지며 가려 먹는다는 것이 현실에선 더 힘들다. 제 몸에 좋다고 비싼 것 마트에서 사다가 먹은 것이 나중에 보면 오히려 가짜로 판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음식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결국 속절없이 당하고만 사는 소비자일 뿐이다. 이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남들 먹는 것 다 먹고 소위 쿨하게 사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는데 먹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활태도도 일조했을 것이다.

건강의 핵심은 결국 ‘먹는 것’이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나 또한 우리의 먹거리가 심각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시민건강 강좌에서 내가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먹는 문제였다. 하나의 세포가 병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질환의 궁극적 시발점은 먹는 거다. 암 발생의 80%는 20-30년 동안의 올바른 식습관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청소년들의 비만의 문제도 결국 설탕과 소금, 지방의 과다한 섭취에 기인한다. 식생활과 식습관의 개선이 없이는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내 감성과 직관은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 잘 먹고자 하는 노력이 나에게는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이기적 태도로 비추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음식 가지고 장난하는 세상이 변하지 않을 텐데-지식과 정보의 약자인 소비자인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다 해도 실효가 있겠냐는 비관적 인식도 없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난 후 그동안 내 생각이 소극적이고 자기편의에 지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결코 남을 해치는 이기적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먹거리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근원적인 현대문명비판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슬로푸드운동은 개인의 일상생활에서의 태도와 노력의 문제인 동시에 지역공동체가 풀어 내야 할 생명평화운동이다. 도시농업의 중요성, 학교급식과 지역의 좋은 먹거리와의 연계, 그 밖의  슬로라이프한 삶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그리하여 후손들에게 건강한 터전을 물려주는 활동인 것이다. 이처럼 먹거리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발전과 연결되어 있다. 

 집에서 콩나물기르기부터
 나는 의사로서 환자분들에게 살찌지 마시라, 뱃살 넣으시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몸범(몸으로 보여주는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며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러나 먹거리문제와 관련해서는 실천이 미흡했음을 느낀다.  40여년 평생 몸에 익힌 습관을 어떻게 고쳐나갈지 암담하기는 하다. 당장 콩나무 시루에 콩나물을 길러 보자는 결심을 하는데 공부방 벽에 걸려 있는 김구 선생님의 '良心建國'액자가 왔다 갔다 하니 원~ 가슴이 먹먹해 오는 기분이다. 왜 첫 결심이 콩나물일까? 내가 어렸을 적에 콩나물국을 무척 좋아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