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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옥(52세, 남포면)
2001년 03월 19일 (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도 우리들의 입에서 되뇌어 지는 이름 '어머니'.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기다려온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서민의 어깨를 누르는 삶의 무게는 더욱 무겁기까지 하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희망보다는 자포자기의 삶들이 많아지고 그러한 삶들을 보면서 혹시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씁쓸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사람.
그 중 가장 큰 후원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일 것이다.
오늘 소개할 이 사람. 그녀도 강한 어머니들 중에 한 사람이다.
지금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의 안주인은 아니다.
오래전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어렵게 시작해 가끔 남편에게 '억순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생활, 그러나 지금은 4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고 또 이웃을 위해 포근한 사랑을 전하며 사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어머니 박동옥(52세, 남포면)씨를 소개한다.
남포면 양항리에서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박씨는 30년전 인근 달산리가 고향이며 8남매 중 장남인 이무식씨를 만나 결혼했다.
대부분의 농가가 그렇듯이 박씨가 시집온 이씨의 집안도 그렇게 부농의 형편이 아니었다.
"첫 아이를 낳고, 어려운 생활에 지쳐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프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한참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박씨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마다 박씨는 맑은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더 열심히 살자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금 한돈에 4천여원 할 때, 송아지 한 마리 값이 18만원이었어요. 결혼반지 팔아 송아지 두 마리를 구입했죠. 그것으로 소작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다 찾아 했습니다. 결국 송아지가 생활터전이 되었죠."
농사꾼인 남편을 따라 이웃집의 소작일은 물론, 장터에 나가 국수장사며 여름철 해수욕장에 자리를 얻어 먹거리 장사 등도 서슴치 않았던 박씨.
"막내아들이 태어나자 마자 흉년이 들어서 농사가 잘 안되었던 때, 저희가 빚을 진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남편이 중동에 일하러 나갔었죠. 아이는 아프고, 일은 힘들고…, 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먼길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기위해 떠났던 남편, 날품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이들은 차츰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송아지 두 마리가 다섯 마리, 10마리가 되고, 1년에 10마리씩 불어나더라구요."
거의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 본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던 박씨와 남편 이씨는 큰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소 10마리를 팔아서 떡 방앗간을 인수하게 된다.
"소값이 한창 비쌀때였어요. 그 당시 3천만원이란 돈으로 방앗간을 인수했고 소작이 아닌 저희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죠."
박씨는 생활고의 허덕임에서 벗어나자 마자 큰 아이를 서울로 유학을 시켰다.
"제가 못 배웠으니까, 아이들 만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방앗간을 인수해 운영하면서도 그녀는 쉴 사이 없이 바빴다.
한 참 성장해 가는 4명의 아이들, 아이였던 때 보다 잔 손은 덜 가겠지만 그 외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10여년이 넘게 방앗간을 운영했고, 4년전 그 자리에 지금 식당을 냈어요. 남편과 둘이서 시작했습니다."
식당을 개업하면서 그녀는 음식을 만들고, 남편은 이리저리 배달을 도맡아 하는 등 눈 코 뜰 새 없이 일했다.
"새벽 두 세시가 되어야 일이 끝나곤 했어요. 설거지를 제 때 하지 못해, 늦은 시간까지 남편이 거들고 해서 끝마칠 수 있었죠."
너무 억척스러웠던 아내에 대해 남편은 가끔 짜증아닌 짜증도 냈었다고 박씨는 말한다.
"부엌일이라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쉽지 않잖아요. 지금은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조금 편해졌습니다. "
이렇듯 열심히 일 해 온 결과 박씨와 남편 이씨는 4자녀를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훌륭히 키워냈다.
큰 아들은 경희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학군단출신으로 현재 육군대위 4년차이다. 둘째 아들은 대전대 건축공학과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며 얼마전 한양공대로 편입 공부하고 있다. 또한 셋째아들은 중부대 사회복지학과에 특차로 입학해 2학년 재학중이며 막내 딸은 전주대 국문과에 3년 재학중이고 학교 추천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이들 4자녀 모두 훌륭한 재원이다.
"이웃들이 '어떻게 가르치냐고' 물어오십니다. 하지만 저희들 생활을 훤히 아는 아이들이 각자 장학금도 받고, 새벽에 신문돌리기, 도서관 아르바이트도 하고, 작은 돈이라도 함부로 쓰는 일이 없어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녀들, 이들의 부모에 대한 효심 또한 그 누구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내려와 농사철이 되면 모를 심고 거두는 일과, 일이 많은 방앗간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벼를 찢고 떡을 찌고, 또한 식당을 개업하면서는 소매를 걷어부치고 상을 치우고 설거지며 청소까지 뚝딱 해 낸다.
이렇다 보니 동네에서도 박씨 부부의 고생이 헛되지 않다고 자녀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박씨는 오래전부터 이웃들과 서로 나누는 삶도 함께 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해 과일이며 떡등 먹거리를 전하는 것은 물론 명절때가 되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그들이 농사지은 쌀을 전달하고 또한 경제침체로 인해 생활이 어렵게 된 이웃의 어린 학생들을 위해 밑반찬이며 먹거리와 교통비를 챙기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10개월여 사경을 헤매다 정신을 차렸어요. 살면서 그 이상 기쁜일이 없었죠. 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챙기는 마음이 참 남달랐어요. 그 아이에게 배웠어요. 큰 것이 아닐지라도 이웃과 나누며 사는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정 연휴에도 모두가 함께 장애시설을 방문해 서로의 정을 나눈 이들 가족.
박씨는 늘 모자란 입장이라며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박씨와 남편 이씨는 4자녀 모두 "아직까지 고생하셨으니까 우리들이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어야 하니까 건강하셔야 해요"라며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에 흐믓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박씨는 편입전 대전대를 다니던 둘째 아들 덕에 대전대 총장이 수여하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어디를 나가서 생활하든지, 열심히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
말보다는 솔선수범 행동을 먼저 보이는 부모, 그들의 사랑으로 잘 자라 또 다른 이웃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자녀들.
우리들의 장한 어머니 박동옥씨는 현재 남편 이무식(58세, 남포 보령가든 대표)씨와의 사이에 승현, 승엽, 승일, 은주 등 3남 1녀를 두고 다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순금차장 sklee@poryon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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