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아내(혹은 남편)가 배우자 모르게 타인으로부터 돈을 빌려 생활비로 사용했다면, 그 사정을 모르고 있던 배우자도 갚을 책임이 있을까? 종종 부부 모두를 피고로 지정하여, 빌려준 돈을 연대하여 갚으라는 내용의 소장을 받아들고, 흥분을 삭이지 못한 채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또는 돈을 빌린 사실도 없는데, 소장을 받게 된다면 황당할 것이다. 하지만 사전 승낙이나 동의 없이 한쪽 배우자가 돈을 빌린 경우, 부부가 연대책임(부부가 함께 갚아야 할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일상가사채무의 부부 연대책임」에 관한 문제다.
민법 제827조 ①항은 ‘부부는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대리권이 있다.’ 이어 제832조는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다른 일방은 이로 인한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이 있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부부 연대책임의 대상이 되는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대법원판례에 따르면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라 함은 부부의 공동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통상의 사무에 관한 법률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 구체적인 범위는 부부공동체의 사회적 지위.직업.재산.수입능력 등 현실적 생활상태뿐만 아니라 그 부부의 생활 장소인 지역사회의 관습 내지 사회통념에 의하여 결정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료품.의류.연료 등 구입이나 거주용 가옥의 임차 등 가족의 의식주에 관한 사무 및 의료비 지급이나 양육.교육 등에 관한 것들이 해당된다 할 수 있다.
특히 돈을 빌린 경우에 관한 대법원판례를 보면 ‘돈을 빌리는 목적, 실제의 지출용도, 기타 사정 등을 고려하여 그것이 부부 공동생활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일상가사에 속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배우자 한쪽이 사업자금 명목으로 빌렸다거나 빌린 돈을 도박이나 사치 등으로 소비해버렸다면 일상가사채무에 속한다고 볼 수 없어 다른 배우자에게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빌린 돈이 지나치게 거액이어서 가정생활과 연결지을 수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위와 사정이 다르지만, 돈을 빌리면서 배우자의 인장을 도용하여 차용증을 작성하거나 연대보증인으로 날인하여 문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인장을 도용당한 배우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책임을 벗어날 길이 있지만 부부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객관적 입증이 쉽지 않다. 빌린 돈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인장도용 사실을 확실히 증명하기 위하여 배우자를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소까지 하는 사례도 있는데, 참으로 딱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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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16 화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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