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보령시협의회(이하 민주평통)는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의식 강화와 현실적인 북한 이해를 돕기 위해 2007년 10.26~30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만주일대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실시했다.

▲ 이동하는 버스에서 강의하고 있는 황의천 교사

압록강 유람선에서

답사 4일째인 10월29일은 단동(丹東)답사를 하는 날이다. 어제 눈이 오고 비가 온 뒤 갠 뒤여서 청명한 날씨였다. 단동은 ‘아침 해가 뜨는 붉은 도시’라는 뜻으로, 전에는 안동으로 불리다가 1965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다.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본 단동 건너편 북한 신의주 연안은 배의 접안 시설하나 없이 강 언덕에 선박 몇 척이 떠있거나, 뻘에 박힌 채로 있어 번화한 단동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단동 압록강 연안의 호텔에 머물렀다는데, 내려다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압록강 철교 너머로 위화도가 보인다. 위화도는 압록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 섬이다.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말없이 강 한가운데 떠서 초라한 북한 주민의 집 몇 채만 보이는 곳이지만... 고려말 이성계가 우왕의 명을 받고 요동정벌을 위하여 이 위화도까지 왔다가 소위 4불가론을 내세우며 회군하여 권력을 잡고, 이어서 새로운 조선왕조를 개창한 계기가 된 바로 그 장소이다. 위화도 회군은 성공한 쿠테타이니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 하지만 광개토대왕 이래의 만주정벌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날려 버린 허탈감도 역사에는 남아있다. 그 후로는 우리가 만주 땅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만리장성 동단기점 호산장성의 허구

▲ 호산장성

이어서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라고 중국측이 주장하는 호산장성을 답사했다. 호산장성 가는 길에 간단한 버스 강의를 했다.

원래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북방민족으로부터 한족의 생활권을 보호하기 위해 쌓기 시작한 이래, 명대까지 감숙성 가욕관에서 북경 동쪽 끝 바다의 진황도 앞 산해관까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장성의 북쪽은 고대 중국 한족의 생활무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단동에서 찾다가 하나의 석성 유적을 발견하고 이 석성을 제거하고 마치 만리장성처럼 축조하고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이라고 주장한다. 이 석성 흔적은 고구려의 박작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을 없애고 만리장성처럼 만들고 호산장성이라 이름 붙였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북경 팔달령의 만리장성을 답사한 사람이면 영락없는 만리장성 모습임을 보고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의도는 너무나 뻔한 것 아닌가? 이곳 단동까지 고대 중국 한족의 생활권이었고, 따라서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술책인 것이다.

이것이 세월이 지나면 하나의 역사로 굳어져 먼 훗날 중국인들은 이 유적을 가지고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은 호산장성이고,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였다고 우기게 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이 1905년 강제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고, 이 사실을 근거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현상과 같은 것이 또 일어날 것이니, 우리는 얼마나 분통스러운 일인가.

압록강의 국경선

▲ 일보과

호산장성 너머에는 ‘일보과’(한걸음에 건널수 있다는 뜻)라고 표시된 안내석이 있는데, 바로 앞에 북한과 국경선인 철조망이 있어서 너무나 가까이서 북한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쪽배를 타고 철조망 아래까지 접근해 볼 수 있었다. 이때 회원들은 철조망의 북한 경비병에게 담배 몇 갑을 전하는데, 그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몰래 철조망 아래 놓고 왔다. 그만큼 그들을 배려하는 우리의 의식이 성숙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경제사정에 대한 우리의 우월의식에 바탕을 둔 행위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국경선은 압록강 한 가운데가 아닌 우리가 서있는 바로 앞의 개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압록강의 모든 섬은 북한령이라고 한다. 강의 국경선은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과거 이곳이 가장 수심이 깊었던 곳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은  토사가 밀려와 하나의 개울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임을 황의호 회원이 설명하여 모두 궁금증이 풀렸다.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간직한 압록강 단교

▲ 압록강 단교

이어서 압록강 철교를 답사했다. 현재의 철교는 중국과 북한의 유일한 육지 통로로 많은 물자가 오고 간다. 그런데 그 옆에는 끊어진 철교가 반쯤만 온전한 채 보존되고 있다. 이른바 단교(斷橋)이다. 이 단교야 말로 우리민족의 한스러운 역사적 사연을 감추고 있는 곳이다. 일제는 경부ㆍ경의선 철도를 부설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간도를 중국영토로 인정해 주는 간도협약을 체결하고 안동(단동)에서 봉천(심양)까지의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얻어냈다. 그리고 이 안봉선과 경부ㆍ경의선을 연결하기 위해 이 철교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단교의 안내기에도 1909년에 공사를 해서 1912년에 일제가 완공했다고 한다. 간도협약이 1909년이니 너무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일제가 간도를 중국에 넘겨준 대가로 건설된 이 다리는 일제의 침략ㆍ수탈의 역사를 설명해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중국과 한국을 오고간 곳이기도 하다.

이어서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진하는 유엔군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은 이 다리를 통하여 중국군을 한국전선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군은 당시 최고의 폭격기인 B-29를 동원하여 폭파해 버렸던 것이다. 중국은 그 흔적을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소위 항미원조 전쟁에 얼마나 영웅적으로 참전했는지를 알리는 장소와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다리 입구에 만들어진 팽덕회 조각상이나 전시된 사진들이 그러한 사실을 잘 알려준다. 또한 파괴된 다리 부분은 폭탄의 위력을 여실이 보여준다. 그 커다란 쇳덩이가 나무 부러지듯이 부러지면서 파괴된 모습에서 전쟁의 전율과 분단의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다리를 걸으면서 다른 민족들은 단지 끊어진 다리모습과 압록강의 경치 그리고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따름이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단동에서 중식 후 심양으로 이동했다. 여기는 고속도로여서 도로 사정이 좋았지만 4시간을 달려야 했다. 심양으로 가는 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현대사의 한 획기적 사건인 시안사건(1936년)을 설명하면서 마음속으로나마 6.25당시 압록강 철교를 넘어온 중국군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이어서 회원들은 자유 발언을 통하여, 이번 고구려 유적 탐사일정이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회장이하 회원들이 한마음으로 사명감에 투철했음이 감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역과 같은 심양역 건물

마지막 날은 심양역을 버스로 지나면서 답사하게 되었다. 심양역을 본 순간 서울역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 여행사 관광상품 어디에도 심양역 소개는 없다. 왜 여기에 서울역과 똑같은 역사(驛舍)건물이 있는가? 다름 아닌 일제의 침략ㆍ수탈 역사의 한 장면인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일제는 경부ㆍ경의선을 이 곳 심양까지 연결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간도가 청에 넘어가는 수난을 당하였던 것이다. 심양은 안봉선의 종점이고 만주 수탈의 중심지였기에 일본의 건축가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모방하여 서울역과 똑같이 설계하여 건축한 것이다. 대륙의 한 복판에 일제의 상징적 건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귀국해서 1930년대 만주 사진첩을 보니 당시의 건물을 중심으로 현재는 주변으로 건물을 확장했음이 보여 지고 있지만, 중심건물은 일제시대 그대로였다.

▲ 1930년대 심양역

요녕성 박물관이 말하는 것

이번 답사의 마지막 일정은 요녕성 박물관 답사였다. 이 곳은 최근에 지은 대규모의 박물관으로 세계 4대문명 중 하나인 황하 문명에 버금가는 요하문명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거란 여진 몽고족 왕조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많은 유물을 우리가 모두 알 수도 없고 알아야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이 박물관을 세운 의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한족이 북방민족을 오랑캐로 칭하며 멸시하였지만 지금은 북방민족의 역사도 중국역사로 인정하고 모두 분열 없이 단합해서 거대한 중국으로 발전해 가자는 의도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 역사도 중국 북방민족 역사 속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양공항 가는 버스에서 이번 답사의 내용에 대한 종합정리 강의를 하면서 모두가 답사의 의미를 돼 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유시간이 거의 없는 빡빡한 일정의 힘든 답사였지만, 모두들에게는 많은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유익한 답사였음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시장님 이하 모든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