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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보령시협의회 고구려 유적 탐사기[2]
황 의 천 (대천여상 교사)
2007년 11월 19일 (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보령시협의회(이하 민주평통)는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의식 강화와 현실적인 북한 이해를 돕기 위해 2007년 10.26~30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만주일대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실시했다.

<문화유산 답사의 힘들었던 일정〉

답사 2일째인 10월27일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답사를 마치고 내일의 답사 예정지인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 즉 현재의 집안(集安)으로 가기 위해 출발하였다. 오늘은 시간상으로 집안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의 통화에서 숙박해야 했는데, 백두산에서 통화까지는 버스로 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 압록강 건너편 북쪽 마을 모습
오후 5시에 백두산을 출발했다. 백두산 자락을 벗어나는 도로는 비포장이면서 주변에는 키가 큰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전개되어 마치 우리나라 60년대의 산속 비포장도로를 체험하러 온 느낌이었다. 교행하는 차도 없이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추적 추적 내리는 밤비를 헤치며 장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니 피곤도하고 기분조차도 우울해 지면서 이런 힘겨운 여행 일정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정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지만, 황의식 회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우리가 관광성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평통자문위원으로서 역사의식 함양을 위해 고구려유적 답사를 온 것이다. 일정을 변경하여 관광성 여행을 추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차라리 그럴 바엔 일정을 포기하고 내일이라도 귀국하자고 했다.

결국 어렵지만 조금만 참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7시간을 달린 끝에 새벽 1시 통화의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다. 첫째날에 이어 오늘도 총 11시간을 버스에서 지냈으니 모두 피곤에 지쳤고, 불만이 나올 만도 하였다. 더구나 나와 같이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동북공정 그 실체는 무엇인가〉

   
▲ 중국 집안(고구려 당시 국내성)에 위치해 있는 장수왕릉 모습
다음날인 10월28일 조식 후 통화를 출발하여 집안으로 향했다. 모두들 얼굴에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집안까지는 2시간 걸린다고 한다. 가이드의 통화주변 안내 설명 후 다시 중국 동북 공정에 대한 버스 강의를 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에 불과하고, 중국 한족이 세운 나라이며, 수ㆍ당과의 전쟁은 중앙 정권과 지방 정권과의 싸움이며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기에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설명했다. 중앙 정권이 지방정권과 싸워 패배하고 국가의 멸망에 이르게 된 것이 어떻게 중앙과 지방정권과의 싸움이 되는지, 고구려는 한족이 아닌 예맥족의 일부로, 중국은 고대에 예맥족을 동이(東夷)로 지칭하면서 배척했다는 것은 역사 기록이 증명하는데 이제 와서 자기들의 한족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결국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한국과의 만주 영토분쟁에 대비하려는 의도가 동북공정에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우리는 고구려 역사를 잊지 말고 우리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면서 미래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가이드가 준비해온 KBS 역사 다큐멘터리 고구려관련 비디오를 보면서 집안으로 향했다. 집안에서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기 위한 사전 학습을 한 것이다. 창밖에는 첫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1500년전 위대한 고구려를 보다〉

드디어 집안에 도착하여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주변의 고구려 고분, 그리고 국내성터, 환도산성터 등을 차례로 답사했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첫눈이 이제는 제법 많은 빗줄기로 변했지만 우리들의 답사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 단동의 호텔 앞에서 기념촬영 모습
집안은 고구려의 2번째 수도로서 당시는 국내성이라 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광개토대왕, 장수왕은 국력을 신장하여 만주를 완전 점령하고 한반도 평양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던 것이다. 고구려 최전성기의 중심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집안은 몇 가지 고구려 유적이 아니라면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중소 도시에 불과했다.

고구려 유적은 집안시의 뒤편 언덕에 있었다. 앞에는 압록강이 개울물처럼 흐르고 그 앞에는 북녘의 산들이 있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배산임수의 지형이어서 전혀 낯설지 않아 보였고, 강을 사이에 두고 맞대어 있으니 우리 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했다.

광개토대왕비는 대왕의 위대한 업적만큼이나 거대한 풍모를 지니고서 금방이라도 당시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였다. 이 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고구려역사를 어떻게 알 것이며,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어찌 알겠는가? 1500년의 만주벌판 풍상을 온몸으로 겪으며 지금 우리 앞에 서서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는 이 비를 보면서 문자 기록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본다. 지금은 비록 중국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수중에 넣고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인 것이다.

광개토대왕릉이나 장수왕릉은 비록 파괴된 곳도 많지만, 역시 위대한 군주다운 풍모를 보여주고 있고, 고구려 초기의 적석총(돌무지무덤) 형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덤 내부는 석실을 만들고 관을 넣어 두었던 돌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돌무지무덤은 서울 석촌동의 백제 고분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이것은 백제가 고구려의 유이민들이 건국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 어찌 고구려가 중국 역사가 될 수 있는가?

주변의 고구려 고분에서 보여 지는 벽화는 우리민족 고유의 풍습인 무용이나 씨름, 사냥 등의 그림이어서 우리와 같은 조상들임을 실감할 수 있었고, 국내성터, 환도산성터 등에서는 고구려 성벽의 특성인 방형으로 다듬은 돌로 쌓아 올리는 축성법 등이 여실히 보여 졌다.

집안시의 앞을 흐르는 압록강으로 가보았다. 압록강은 1500년전에도 저렇게 흐르며 고구려 제국의 위대한 모습을 지켜보았겠지만 지금은 무심히 흐르고만 있을 뿐이었다. 건너편의 북녘 산은 모두 벌거숭이 민둥산이다. 어려운 경제사정에 화전 후 조림사업이 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북녘의 모습이었다.
 
〈진정한 역사 학습의 성과〉

답사를 마치고 3시에 집안을 출발하여 다음 목적지인 단동으로 향하였다. 다시 버스 강의를 통하여 답사한 고구려 유적에 대한 종합적 설명과 함께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것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역사 교육이 아닐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진리인 것이다. 알면서 몸으로 느끼는 답사가 이번 민주평통의 답사가 아닌가 싶다. 강의 후 다시 고구려역사 관련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2편이나 시청하면서 단동으로 향했다. 누구도 다른 비디오를 보자 않고 열심히 시청하는 모습이 대단한 관심이었다. 집에서 TV프로그램이라면 이렇게 열심히 볼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고구려 첫 수도인 환인을 시간 일정상 답사하지 못함이었다. 단동 가는 길 중간에서 압록강에 합류하는 혼강(비류수)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비류수는 환인 앞을 흐르는 강이기 때문이다. 압록강을 따라 달리는 차창 밖은 끝없는 옥수수 밭의 연속이었다.

〈단동에서 본 북한의 단상〉

5시간을 달린 끝에 단동에 도착하니 밖은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단동시내 불빛이 휘황한 것이 발전하는 중국 국경도시의 모습을 실감나게 했다. 강 건너편이 북한의 신의주이다. 지척인데도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에서 말로만 듣던 북한의 현실이 눈앞에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저녁식사는 단동의 북한식당에서 하게 되었다. 다양한 한식메뉴가 나와서 지금까지의 피로를 깨끗이 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예쁜 북한 아가씨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가무를 보여주어 더욱 좋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 후에는 북한 아가씨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대화도 하면서 우리와 한 핏줄임을 실감하였다. 그런데 한 회원이 보니 2층 방에서 감시원이 내려다보면서 감시하는 것을 보았다 하는데, 우리의 선입감인지 아니면 감시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면에서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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