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 101호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정형근 의원(한나라당, 부산 북구·강서 갑)은 “상임위에 재검토 회부된 법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했지만, ‘서로의 의견’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이 법안 도입에 찬성하는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힘의 논리에 밀렸나

첫 토론자로 나선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먼저 “법안이 힘의 논리에 의해 밀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의사협회 힘에 밀려 재회부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 8월 29일 법안 소위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안이 9월 11일 전체회의에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되돌아 온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날 논의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입증 책임전환 문제에 대해 김 국장은 “의료행위는 굉장히 전문적이고 폐쇄적이며 관련 정보도 의료진이 독점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할 수 있겠냐”고 입증 책임을 의사가 지도록 한 법안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입증 책임전환은 의료진과 피해환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 왕상한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가 법안 도입에 반대하는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현행법 개정으로 충분

이에 대해 왕상한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서강대 법대교수)는 현행법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왕 이사는 “현행 의료법 22조에서 환자의 상태 및 결과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게 돼 있고 의료법 90조에 이를 위반했을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기하고 있다”면서 문제가 있다면 “현행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왕 이사는 일반 환자가 의료 과실을 규명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또 다른 의료인으로부터도 충분한 전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서 “만약 전문적 지식을 얻기 힘들다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왕 이사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환자는 소송을 제기만 하면 되고, 변호사는 소송 의뢰만 맡으면 되므로 소송이 남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결과적으로 변호사들의 이익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훈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역시 법안으로 인해 방어진료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 교수는 “입증 책임 전환으로 인해 오히려 의료인으로 하여금 응급·중증 환자에 대한 진료를 꺼려하게 만들 것”이라며 충수돌기염(맹장염)을 예를 들었다.

그는 “젊은 사람도 부분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질병인데 75세의 노인이, 그것도 10년 간 당뇨 등의 합병증을 앓아 온 사람이 여러분 앞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며 반문하고 “무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단계적 절차만 주장하다 보면 그 위험성은 환자에게 고스란히 짐 지워 질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입장 ‘부정적’

이에 대해 이인재 보건환경문제연구소 소장(변호사)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도 있고, 실수로 인한 의료 사고도 있다”며 “무조건 의료진의 잘못을 해명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수였는지 불가항력이었는지를 의사들이 밝히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입증 책임전환이 의료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일방적 규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현행법을 먼저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왕상한 이사의 주장에 대해 이 소장은 일부 동의했지만, “현행법 처벌 규정과 처벌 수위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허위 진료기록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고, 기재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 처벌 수준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런 상황에서 환자에게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라 한다면, 옷을 벗겨놓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라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정부 입장을 대표한 김강림 보건복지부 의료정책팀장은 “경제적 측면에서 법이 도입되면 개별 소송에서는 신속한 처리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분쟁 건수가 늘어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면서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또 김 팀장은 “근본적으로 의료진과 피해 환자 등 당사자들이 동의해야 작동할 수 있는 법안인데, 이처럼 극명하게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과연 수용이 가능하겠는가”라며 법안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의도 통신 장정욱, 한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