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보령경제

대형마트의 지방입점이 과열경쟁의 양상을 띠며 지역의 경제와 문화, 정서를 뒤흔들고 있다.

입점을 코앞에 둔 삼성 홈플러스(이하 홈플러스)의 경우 2009년까지 99개의 매장을 확충, 경쟁업체인 이마트를 따라잡는다는 방침을 세운 걸로 알려져 업계 선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대기업의 경쟁 속에 지역 중소상인과 관련업계는 속수무책이다.

11만여 시민이 사는 보령에 대형마트 두 개가 들어설 예정으로 있어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지역경제의 모습은 구매력 있는 지방 중소도시의 현주소이다.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보령에 생긴다. 비싼 연료를 소비하며 멀리 군산까지 쇼핑할 일 없어져 반가운 일이다”며 기뻐하는 시민도 있으나 소비자보다 상인수가 더 많은 한산한 재래시장의 점포주나, 5일장을 돌며 노점을 하는 상인들에게는 당장의 추석대목도 반갑지 않다.

지난 17일, 홈플러스 보령점은 처리기간 20일인 ‘대규모 점포 개설등록’을 마쳤다.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보령시는 점포개설을 허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점 예정일인 23일 현재, “내부사정으로 인해 월말쯤으로 개점이 연기됐다”고 홈플러스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유통업을 하는 한 시민은 “상인의 입장을 고려한 보령시청과 거대자본 홈플러스 간의 ‘상생협약’에 대한 조율은 현재의 법률·행정적인 대형마트 입점에 대한 견제책이 전무한 상황이고 보면 또 한 번의 허탈함이 예상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관련 규제법안의 부재 속, 한숨 쉬는 상인들

10년 전의 유통시장에 대한 대책 없는 개방은 재래상인은 물론 중소유통업자의 몰락과 함께 대형마트의 폭발적 증가세를 이끌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의 보고(2004년 기준)에 따르면 유통시장 개방이후 8년 만에 중소유통업체(슈퍼, 편의점 제외) 14만 여 점포가 문을 닫은 반면 대형마트는 2백48개 점포가 증가했다.

충북참여자치연대가 충북지역 국회의원 8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 의견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8명 중 7명이(1명은 답변거부) 지역 자영업자, 재래시장의 생존위협과 자금역외유출, 상권붕괴 등 지역경제 침체를 이유로 대형마트 규제에 찬성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법안 마련을 위해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으나 발 빠른 행보의 대형마트의 입점노력은 이미 구매력 있는 지방도시 곳곳에 거점 마련을 끝마쳐가는 모습이다.

대형마트 규제 법안은 표류 중

대형유통업체의 출점 기준을 엄격히 제한하고 주변 상권과의 공생을 위해 영업품목과 영업시간 등을 조정하고자 발의된 법안인 ‘지역유통산업 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법안’은 2006년 5월,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의 대표발의로 현재까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 계류 중인 채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발의법안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하 시장)은 대규모 점포 개설 허가, 사업활동의 조정, 지역유통산업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심의기관인 ‘유통산업균형발전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역중소유통업의 협업·효율화 방안, 지역산품의 지역소비촉진을 위한 방안, 지역 유통이윤의 지역재투자 방안 등을 포함한 지역유통산업균형발전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안 제4조 및 제5조)

- 대규모점포를 개설하고자 하는 자는 설명회 개최, 시장에게 설립허가 신청 후 공청회와 인근 자치단체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안 제6조 및 7조)

- 시장은 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규모 점포의 설립을 허가할 수 있으나, 인구기준 개설점포수가 초과된 경우, 상업시설의 적정면적이 초과된 경우 등은 설립허가를 할 수 없으며, 시장은 대규모 점포의 설립이 중소유통업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입지의 변경, 매장면적의 변경, 영업품목 제한 등을 조건으로 설립을 허가할 수 있다. (안 제8조 및 9조)

- 시장은 월 2일 이상 4일 이하 범위의 의무 휴업일수와 주중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 이내의 범위에서 조례에 의한 영업종료시각을 명령할 수 있다. (안 제13조 및 제14조)

- 지역중소유통업자는 지역유통조합을 결성할 수 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공동상호 또는 자기부착상표의 개발· 보급, 점포시설의 표준화, 판매촉진 등의 공동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 보조할 수 있다. (안 제15조 및 제16조)

- 지역주민은 지역소비자회를 설립할 수 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역산품의 홍보· 판촉, 중소유통업자의 애용 등을 위한 홍보사업 등에 필요한 행정·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안 제17조 및 제18조)

- 대규모점포가 영업품목 제한명령, 의무휴일일수 및 영업시간 명령을 위반하였을 경우에는 6월 이내의 범위를 정한 영업정지 처분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안 제23조)

이 법안 외에도 심화된 유통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법안으로 ‘대규모점포사업 활동조정에 관한 특별법안’(열린우리당 이상민의원 발의)등이 발의돼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의 균형발전을 위한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으나 “중소유통업체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위배 된다”는 것이 산자부의 입장이다.

또한, 소비자 선택권 확대, 영업활동의 자유 등을 근거로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 반대하는 산자부는 일관되게 대형마트에는 무제한적인 영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반면, 몰락하는 중소영세유통업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으며 중소제조업체 70.4%가 경험했다고 나타난 대형마트의 불공정행위를 시정조치 정도로 관리·감독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점이 지역물가 하락에 공헌하리라는 예상은 오판

지난해 9월,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에서 발표한 대형마트 출점이 지역중소유통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 보고서(이하 연구보고서)(2005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 총 소매업의 매출액은 157.1조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5.2% 증가한 반면 재래시장 매출액은 8.7% 감소했다.

또한, 전국 대형소매점의 총매출액은 41조원으로 전년대비 7.9% 증가했는데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전년대비 12% 증가한 24.1조원으로 나타나 대형소매점 총매출액 증가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도 대형마트 매출 증가액 2.6조원은 같은 해 재래시장 1개시장의 평균매출액을 감안하면 약 130개의 재래시장 총 매출액에 상당하는 액수이다 (2005년 재래시장당 매출액 1백97억원).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보고서는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이 재래시장 및 중소유통업에 미치는 매출감소와 실업증가의 영향을 심각한 수준이라 분석했다.

이와 함께 나타난 연구보고서의 분석내용을 보면 대형마트 면적과 물가지수와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면적이 넓어질수록 물가지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형점이 물류효율화와 바잉파워를 통한 원가절감으로 지역물가 하락에 공헌하리라는 예측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대형마트의 물류효율화를 통한 물가하락 효과는 대형점이 입점한 지역에 한정적으로 나타나고, 그 외 지역은 상권이 몰락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수 있어 전체를 합산할 경우 상대적으로 물가상승효과가 더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대형마트가 특정지역에 집중할수록 물가는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정지역에 집중돼 있는 대형점이 권역 내 다른 지역의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타 지역의 구매력을 흡수해 타 지역의 상권을 쇠퇴하게 함으로써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대형마트의 면적과 특정지역 집중도가 커지고 높아질수록 물가는 상승하게 되는데 이는 대형마트들이 특정지역에만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출점하고 있고 권역 내 타 지역에는 물가하락요인을 제공하지 못해 전반적으로 물가하락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권역 내 상권간의 구매력 이동이 용이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현대화된 유통시설활용과 더불어 다양한 유통업태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대형마트 출점의 긍정적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연구보고서는 판단했다.

‘지방자치’라는 멀고도 험한 여정

선진국의 경우 30~50년간의 긴 시간을 두고 유통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10여년의 짧은 기간을 통해 경쟁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지방 중소 도시의 경우 대형마트 입점에 따른 부작용은 크다.

실례로 지역자본이 외부로 막대히 유출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 지역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으며, 대형마트의 가격경쟁에 따라 생산자에 대한 과도한 단가인하 요구 등의 병폐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심상정 의원이 밝힌 대형마트 납품 중소제조업체의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70.4%가 불공정거래행위를 겪고 있으나 거래중단 등의 우려로 84.2%가 묵인하고 계속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중소제조업의 경영을 악화시켜 제조업의 기반마저 붕괴시키고 있다”고 심상정 의원은 말한다.

대책 없이 황야에 내 놓인 지방 중소 도시의 오늘은 ‘지방의 특색을 계승· 발전시키고 지방자치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원대한 포부는 실로 ‘꿈’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