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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2007년 08월 20일 (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5·18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우리를 다시 역사의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학생들은 학교전체가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27년 전의 오늘을 기억하고 망각의 늪에 빠졌던 항쟁의 10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역사적 팩트와 영화적인 픽션은 분명 다른 것임에도, 화려한 휴가는 80년 5월 한국현대사의 공간에 접근하여 한국인들의 집단체험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복원하며 “아담,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80년 5·18에서 27일 새벽까지의 군사작전 ‘화려한 휴가’는 말 그대로 전두환 신군부의 작전이 관철된 결과물이면서 80년 서울의 봄의 시기에 활동했던 여러 민주화세력의 좌절이 담긴 기록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를 꿰뚫고 그 한계를 돌파하여 전진하고자 했던 이들의 깃발이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12·12를 통해 군부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수개월에 걸쳐 군사정권 출범계획을 하나하나 구체화하고 있었는데도 민주화세력은 5·18 이전에 이미 양김씨 세력으로 분열한 채 대통령선거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던 재야세력의 일부는 군부의 재집권 명분을 준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투쟁을 가로막았고, 비상계엄이 확대되자마자 군부의 손아귀에 떨어졌거나 골방에 숨어 참혹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광주의 투사들은 골방으로 숨지 않고 거리로 나와 살인적 탄압에 저항하다가 마침내 총을 들고 70년대식 성명서운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과거의 타성에 젖어있는 이들은 여전히 총을 내려놓고 신군부와 타협하길 원했지만,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역사의 전진을 갈구했던 이들은 자신들이 내건 깃발을 끌어안고 장렬하게 죽었다. 살 수 있던 길이 있었음에도 투사들이 역사의 제단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죽음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 민주화와 통일의 길로 당당하게 행진하라는 뜻에서였다.

80년 5월의 화려한 휴가가 끝나자 신군부는 재빠르게 전리품을 챙겨 권력을 먹었지만, 5월의 제단에 몸을 던진 열사의 정신은 80년 내내 살아나서 역사를 밀어 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실제 모델인 윤상원의 투쟁과 죽음을 메인스토리로 영상화한 것이다. 당시 들불야학을 하던 그에게 70년대식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운동에 참여를 권유했고, 적극적인 투쟁으로 역사를 개척하자고 다짐했던 필자로서는 살아남은 자로서, 그의 뜻을 다 받들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올해 여러 동지들을 ‘5대운동 및 5대거품빼기운동’ 과정에서 만나면서 70년대의 열정이 내 가슴에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런 참에 화려한 휴가가 상영되고 그의 영웅적인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한 순결한 영혼의 제물을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신을 차려 다시 역사 앞에 서라는 준엄한 명령인 것이다.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5·18은 어느덧 역사가 되고, 열사들은 박제화 돼 갔다. 그동안 민주화세력들은 기백을 잃은 채 기성 정치세력에 흡수되어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실패해 지리멸렬한 상황에 떨어졌다. 비록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섰고, 나름대로 노력한 것도 있지만, 열사들이 염원했던 새로운 역사적인 출발을 만들지 못하고 말았다.

화려한 휴가는 일상의 삶에 빠져있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역사의 전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 자신? 가족? 회사?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5·18과 윤상원 정신을 모욕하고 있는 자들,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땅에 떨어뜨린 자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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