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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과 하도급 연대보증제도의 단계적 폐지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2007년 05월 21일 (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한국에는 이상한 제도가 많다. 너무 익숙해 있어서 세계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줄 알고 있는데, 실상은 우리와 일본에서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음발행이나 연대보증제도가 그런 경우이다. 어음은 수표와 달라서 배서를 해서 제3자와 거래를 할 수 있고, 신용도에 따라서 할인까지 할 수 있다. 어음제도는 당장 지급여력이 없거나 준비가 안된 경우에 몇 개월 뒤에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증서이므로 중소기업 등에서 애용해왔고, 부도나 신용파탄을 막아주는 긍정적 기능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행 어음제도는 이런 순기능적인 역할과 기능보다 부정적인 기능이 너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흑자 나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즉 지급능력이 있는 기업조차 2~3개월의 어음을 끊어주는 것이 일반적 관행으로 굳어져 하도급 관계에 있거나 협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2~3개월, 또는 5~6개월의 어음쪽지를 받을 수밖에 없고 자금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할인’(일명 와리깡)이라고 불리는 고리를 뜯기고 현금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어음제도는 이렇게 악용되고 있어서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들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고 경영을 악화시키는 주요수단으로 변질되어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음에도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어음제도와 마찬가지로 낡은 생산과정의 유산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도급제도이다. 일반적으로 건설회사 간에 고착화되어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원부자재 납품관계에서 유지돼온 제도이다. 수천, 수백 개의 원부자재를 모아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제조과정의 특성상 원청-하청 관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이런 제조과정의 압도적 지배력을 이용해 하청기업에 일방적으로 납품단가의 인하나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의 이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이런 대기업의 횡포를 극복하고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매우 적다는 통계도 나왔다.

따라서 제조과정, 생산과정의 특성을 살리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낡은 하도급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거래 관행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하도급이라는 법적 관계를 폐지하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상생관계로 자리매김하여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이 구체화되어야한다. 현재에도 중기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강구하고 있지만 일시적 효과 이상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그 근본적 대책은 상법 등 기존 일본법을 그대로 모방한 하도급 규정 등을 국민경제의 현실에 맞게 단계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제에 금융기관 위주로 돼있는 연대보증의 책임도 당사자로 국한시키거나 연대보증의 효력과 책임의 범위에 대한 제한조치도 요구된다. IMF 이후 파산된 많은 사람 가운데 친척이나 친구 등의 연대보증으로 인해 졸지에 극한상황에 내몰린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존의 연대보증제가 금융기관의 채권 확보를 우선시하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금융기관의 대출은 대출당사자의 신용조사와 담보금액 등을 통해 결정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친인척이나 인간관계까지 끌어들여 연대보증까지 강요하는 것은 분명 인간관계의 파괴이며 시대착오적인 금융기관의 횡포이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을 악화시키는 어음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수표제도를 도입하여 신용과 계약준수의 기풍을 진작시킨다면 투명한 거래질서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도급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공정하고 독립적인 협력업체 제도를 운영한다면 중소기업의 활로와 성장의 기회도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연대보증제는 인간관계의 파괴범이고 금융기관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므로 폐지시켜 금융기법의 실질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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