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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행복한 보령 (3)
2007년 04월 23일 (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1970년 대 보령시내의 모습
우리가 살고 있는 보령의 1970년대 후반기 사진을 지면을 통해 실으면서 잠시 옛 보령을 회상해 본다.

산맥이 감싸 안듯 껴안고 있는 보령의 중심지 대천은 무한이 커져 갈 수 있는 땅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성주산 자락 밑에 펼쳐진 넓고 넓은 우리들의 삶의 땅 대천.

그 시절 작가가 살고 있었기에 이렇듯 그 당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지금 자료로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보령의 30년 후 모습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많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다.

70년 대 필름속에 담긴 시내의 전경사진을 보니 미래의 주인공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터전이라서 그런지 잘 지어진 학교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앞 쪽 운동장이 넓게 보이는 것이 대명중, 좌측이 대천여중, 그 옆쪽이 대천초교, 시내 중앙 위치에 있는 것이 대남초교,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대천고와 대천중이다.[사진 상]

아래 사진은 1980년대 후반기 사진이다.

그 때는 대관초등학교가 터전을 잡았고, 오른쪽에는 대천여고가 한 눈에 보이고 있다.

옛 보령군 70, 80년대 시절만 해도 더 많은 초·중·고등학교가 우리 미래 인재들의 교육을 담당했겠지만 지금은 50여 개가 채 되지 않는다.

보령 교육계의 연교를 보더라도 90여 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보령의 중심지에서는 대천초교(1918. 5월)가 제일먼저 개교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어 대남초(´49.4), 한내초(´68.10), 대관초(´85.9), 동대초(´03.6), 명천초(´05.5)다.

중학교로써는 보령중이 ´51.9월 개교 후 ´53년 4월 대천중으로 개명했다. 이어 대명중(´64.3), 대천여중(´64.3), 한내여중(´82.3) 순이다.

고등학교는 대천고가 대천공립전수학교(´44.5)로 개교 후 대천고(´76,11)로 개명했으며, 대천여고가 ´64년 5월 대천여중과 병설로 개교 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또 대천여상이 ´83년 3월 개교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보령시민이라면 이러한 개교기록을 알아두는 것도 가치가 있는 듯 하다. 그래야 우리들의 자녀교육에 더욱 더 보탬이 되고 보령을 알리고 역사를 인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내 고향 보령사랑과 내가 다녔던 모교의 자랑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작가도 보령의 지나온 역사적인 기록을 늦은 감은 있지만 배우고 깨우쳐 기록해 우리 보령시민을 위해 홍보하고 배워나갈 것이다.

보령에도 수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성주사지, 최치원 선생의 비, 옛 왕이 다녀갔다는 왕대산, 김좌진 장군 묘역, 김성우 장군 격전지, 장고도의 등바위 놀이, 보령의 탄광지대, 보령의 1급수인 보령댐, 대천해수욕장, 보령의 수 많은 섬 등등 보령에 있는 것이다.

수많은 자원과 역사적 기록을 알고 배워야 참된 보령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1980년대의 모습

/프리랜서 김동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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