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앞 도로변에서 장롱 한 짝과 책장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다가가  살펴보니 흠집이 없는 것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살림살이였다. 그 바로 옆에 보니 포대자루에 곡식이 담아 있는 듯해 들춰 보니 한 귀퉁이 헤어진 곳에서 쌀이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회활동중에 이런 일들이 빈번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다. 그런데 좀 더 특이해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냄새도 맡아보았으나 이건 새 쌀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이 쌀이 왜 버려진 것일까? 나는 동회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전 노인종합복지회관 강의차 찾아 갔을때 가전제품이나 가구류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았기에 장롱이며 책상을 그 곳에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보나마나 이 가구들은 쓰레기분리장으로 옮겨질것이 뻔한 일이기에 말이다.

동회직원들이 트럭을 가지고 온다고 했다. 나는 기다리는 중에 참 좋은 세상이구나 하면서 문득 어렸을 때 등잔용 석유기름(등유) 사러 갔던 생각이 났다. 한내다리를 건너서 오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간이 주유소였다. 함석으로 만든 되박저울로 소주 대두병에 석유를 담아 팔 때였다. 그 때 깔대기를 통해서 병속으로 들어가는 석유에 눈총을 주고 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석유주인은 눈대중으로 석유를 담으면서 조금이라도 덜 담아 주려고 핏발이 설 정도로 긴장했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총애를 받으면서 컸다. 아홉 남매중에서 귀하게 컸다. 그러한 사랑 중에는 심부름을 시키시면 영락없이 잘 한다는 것으로도 그랬다.

그러나 석유 심부름에 병을 깨는 일은 없었지만 석유를  더 주셔요 하고 욕심부리지는 못했다. 그저 담아 주는대로 착한 마음으로 석유주인이 하는대로 맡겼던 기억이 난다.

40여년이 지나온 지금 새것이나 다름없는 장롱과 책상을 집에 들여 놓을 곳이 마땅하다면 들여 놓고 싶었다. 새삼 드라마에서 어머니가 쓰시던 장롱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뒤 켠에다 놓고 5년여 동안을 장롱 속에서 잠을 잤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일들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일로 느껴졌다.

마당을 쓸다가 녹슬은 못만 나타나도 주워서 챙기던 시절은 세월 속에 함께 흘러갔는지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절약이라는 단어가 사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인지 애용하던 물건을 자꾸만 대문 밖으로 내치니 물질이 너무 흔한 세상을 나무라야할지 참 모순이다.

요즈음은 아파트생활에 익숙해져서도 그렇겠지만 그저 새것, 멋있는 것, 아름답다고 하는 것, 비싼 것에 만연된 것도 죄가 있다면 아파트에게도 한 몫 지어줘야겠다.

 몇 십년 전만해도 무엇이든지 집안에 들여 마당 한 켠에 모아 두었던 그 근검, 절약했던 마음은 어디 갔을까? 이런 저런 상념속에 서성이다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러 나온 동사무소 직원이 트럭을 가지고 왔다. 그저 사다놓은 쌀이 만연된 외식덕분에 좀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일용할 소중한 쌀이 순간 쓰레기로 바뀌니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 쌀 한 자루는 어떻게 됐을까? 준비를 마친 담당직원은  요즈음 2백여 만 원하는 쇼파를 구입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칼로 쇼파가죽을 베었다고 쓰레기장에 내놓은 것을 노인시설에 갖다 드렸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지 과연 얼마나 됐을까?

국민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빈부의 격차가 자꾸 벌어져 지하살림속에 사는 빈민의 소득은 과연 얼마일까?

바로 윗세대를 살아가신 어른들께서 보릿고개 넘기며 허리끈 줄이며 절약한 결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다고 생각하면서 옷깃을 여미고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와 함께 물질적 풍요를 유지하기에는 현대인의 빈약한 정신세계를 채워줄 정감과 검약이 포함된 정신적 풍요가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새것을 쓰레기로 버리면 버릴 수록 머릿속에는 황폐와 주림과 공허가 채워질 것이다.

버리기전에 요모조모 살펴보고 시골집 마당에 보관했다가 버릴것을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릴적 헐어버린 농짝으로 신발장을 만드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옆에서 시중들며 못이며 톱이며 망치를 집어 드리던 손이 그대로인데 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

“아빠도 버릴때가 있으셔요?”

“글세 이것은 너무 낡아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아궁이에 넣으렴” 하던 그 시절 울넘어 들려오던 부녀간의 검소한 정담 그 정담 다시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