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도 시장지배원리에 지배될 수 밖에 없다. 농산품도 상품이고 상품으로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 더 못짓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말이다. 지난 20일 노무현 대통령이 농·어업분야 업무보고에서 행한 이 발언은 한미FTA 타결을 앞두고 이정부가 농업정책 근간을  바꾸는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영세농을 중심으로 농어민들 사이에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원칙은 맞지만 한국농업의 특수성에 비춰보면 틀린 말이다.

약 1세기전인 1914년(광무 18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근대적인 통계가 시작될 무렵에 한국인구는 1579만 명이었고, 농촌거주자는 96.6%였다.

이 가운데 지주는 전체 농가의 3.4%, 150ha 이상의 만석꾼은 일본인 332명, 한국인 238명이었다. 만석꾼은 오늘날 30억원 정도의 부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통계를 통해서 몇 가지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주체가 교체되어 100년 전의 만석꾼은 오늘날 기업가로 대체됐다.

군량미 조달을 장려한 정책으로 태어난 것이 만석꾼이라면, 수출을 위해 정부가 키운 것이 지금의 대기업이다. 이들 주체는 사회 상층부에 앉아 있다.

또 하나는 97%의 농어민들이 1세기 후에는 7%로 줄어들었고, 소득도 복지도 형편없는 조건에 살고 있다.

농민들의 생활은 1세기 전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350만 농민 가운데 29%인 100만명이 65세 이상의 고령농민들이다.

전남, 경북, 충남지역은 그렇지 않아도 고령사회의 지표인 65세 노인 14%선을 넘었다. 소득,  교육, 의료 악화가 탈농촌을 촉진한 결과이다.

충남의 고령농민은 그 두배인 30%에 달한다. 이분들은 국민으로서 누려야할 복지, 질병치료의 권리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한 푼이 아까워 병든 몸을 숨기고 외지에서 보내는 이전소득으로 한계생활을 하고 있다.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같은 농촌,농민, 농업의 현실을 덮어두고 시장지배 논리만을 들이대도 되는것인가? 사회적 약자인 농민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대통령은 깨달아야한다.

지금 우리 농촌은 또 곧 타결될 것 같이 보이는 한미 FTA로 최대의 위기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느닷없는 협상발표와 개방을 앞세우며 농업구조조정과 시장원리를 최고의 정책으로 삼고 한미 FTA를 밀어부치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농민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 노동력 상실로 영농이 불가능할 때, 정부가 소득감소를 보전해줄 때 등 세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첫 번째는 선진국조차 1%의 성공을 보일 정도로 실현성이 없다. 두 번째의 구조조정도 1세대를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선택은 정부지원 확대이다. 그러나 지금보다 10배를 늘여도 그 혜택은 10%의 농가에 그친다.

정부의 역할은 경쟁력과 구조개선 과정을 제약하는 요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소하는데 집중지원 해야지, 구조조정 속도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주체가 되려고 하는 정책적 착각과 오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농사도 장사다'라는 식의 정책은 지금까지 언급한 농촌현실을 착각한 산물이기 때문에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말한 것처럼 농민들에게 생존권을 위한 투쟁심만 부추길 뿐이다.